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주님 공현 후 수요일
-마르코 6장 45-52절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흔들릴 때 마다
강한 맞바람을 맞으며 큰 사막을 횡단해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얼마나 바람이 강하던지 광풍(狂風)이라고 불릴 정도입니다.
바람이 모래 속까지 후벼 파고 들어가 그들을 자기 몸에 싣고는 함께 휘몰아칩니다.
모래 바람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옆으로 돌려야 합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다보니 걸음이 이리 저리 비틀거립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제자들의 짧은 항해가 그랬습니다.
갈릴래아 호수를 건너가던 제자들은 거센 역풍을 만났습니다.
마음먹은 방향으로 배가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배의 방향을 바로잡기 위해 제자들을 기를 쓰고 노를 저었습니다.
조금씩 나아간다고 생각했지만, 역풍이 얼마나 거세던지,
배는 밤새 제자리에서 뺑뺑 맴돌았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젓느라 다들 탈진상태에 도달했지,
날은 칠흑같이 어둡지, 역풍은 멈추지 않지,
배는 제자리에서 맴돌지, 예수님은 계시지 않지,
제자들의 마음은 점점 불안해지다 못해 공황 상태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제자들이 그랬듯이 우리 인생에도 반드시 역풍이 있습니다.
언제나 내 인생이 상승곡선만 그려갈 것 같았는데, 때가 되면 어쩔 수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롤러코스트를 타고 내려가듯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곤두박질치는 것이
우리네 삶입니다.
신앙생활에도 반드시 깊고 어둔 밤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오늘 복음을 기억해야하겠습니다.
역풍을 만나 고생하고 있는 제자들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나 몰라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덕 위에 서서 ‘쌩고생’하던 제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이윽고 개입하실 순간이 오자 지체 없이 제자들을 향해 다가가십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였던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윽고 그분께서 배에 오르시자 미친듯했던 바다는 순식간에 잠잠해졌습니다.
고통의 바다(苦海)인 이 세상을 건너가며 갖은 역풍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오늘 복음은 큰 위로와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삶이 흔들릴 때 마다, 죽을 것만 같은 회색빛 날들이 계속될 때마다,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단 한순간도 우리에게서 당신 눈길을 떼지 않고
우리의 상황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무리 큰 파도가 다가온다 할지라도, 아무리 칠흑 같은 밤길이 거듭된다할지라도,
머지않아 그분께서 내 인생의 배 위로 올라오시면 순식간에 역풍은 멎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이란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여행길입니다.
여행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는 관대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여행지에서조차 집에서처럼 안락한 잠자리를 꿈꿀 수는 없습니다.
물설고 낯선 나라에서까지 내 입에 딱 맞는 향토음식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행 중에 만나게 되는 갖은 불편들, 낯선 문화와 접하면서 겪게 되는 스트레스들,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순례자로서의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지상 순례를 계속해나가는 동안,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될 역풍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할 태도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불평불만은 아예 입 밖에도 내지 않는 일입니다.
투덜거리기보다는 호기심과 경외심을 가지고 주변풍경들을 심취하는 일입니다.
높은 파도가 다가올 때는 분노하기보다 오히려 그 높은 파도를 즐기는 일입니다.
역풍을 만날 때는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맞서는 일입니다.
머지않아 당도하게 될 도착지의 아름다움을 상상하는 일입니다.
향기로운 과일들이 주렁주렁 열려있는 오아시스의 풍요로운 땅을 떠올리는 일입니다.
오랜 여행으로 지친 우리를 당신 따뜻한 품에 꼭 안아주기 위해 팔을 활짝 벌리고 계신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보는 일입니다.
그곳에서 오랜 여행을 마무리하고 영원한 복락을 누릴 그 기쁜 순간을 미리 만끽하는 일입니다.
역풍으로 인해 두려울 때 마다, 갖은 인생의 고통으로 인해 힘겨울 때 마다,
우리 항해의 선장이신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내 인생의 배, 선장실에 앉아계시고,
언제든지 내게 다가올 준비를 하고 계심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가톨릭 사랑방 cafe.daum.net/catholics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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