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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통한 승리
108, 1 - 13
이 시편은 다윗의 다른 시편에서도 볼 수 있다.
1 - 5절은 시편 57편 7 -11절에서 볼 수 있으며, 6 - 13절은 시편 60편 5 - 12절에서 볼 수 있다.
우리는 마치 쇠붙이가 자석에 들어붙듯이,
하느님께 우리 마음을 고착시켜야 한다.
「마음을 정했습니다. 하느님, 마음을 정했습니다.
노래하리이다. 거문고 타며 노래하리이다. 나의 마음아, 눈을 떠라」(1절).
우리가 하느님과 바른 관계에 있다면,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하느님께 찬양노래 부르면서 세상을 살아 갈 것이다.
여기 야훼 찬미에 대한 노래가 있다.
「야훼여, 뭇 백성 가운데서 당신을 찬미하리이다.
뭇 나라에게 당신의 찬양노래 들려주리이다. 당신의 사랑, 그지없어 하늘에 미치고
당신의 미쁘심, 구름에 닿았사옵니다. 하느님, 하늘 높이 나타나소서.
온 땅에 당신 영광 떨치소서」(3 -5절)
다윗은 이스라엘을 위대한 국가로 만들고,
영토를 유프라테스까지 확장하려는 일념에 차 있었다.
다윗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성소(聖所)에서 말씀하신 것을 깨달았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성소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 이제 흔연히 일어나리라.
세겜을 차지하고...불레셋을 쳐부수고...누가 나를 그 견고한 성으로 인도할 것인가?"」(7 -10절).
이제 다윗에게 남은 일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땅을 점령하고 소유하는 일인 것이다.
이것은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축복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원수를 쳐부술 수 없다.
원수들은 우리보다 강하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정해졌다면, 하느님은 우리 앞에서 원수들을 쳐부수실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분의 뒤를 따라갈 뿐이다.
우리의 내(內)적인 싸움에 인간의 도움은 무용한 것이다.
「사람의 도움은 아무것도 아니옵니다. 하느님과 함께라면
우리는 용맹하리니, 하느님께서 원수들을 짓밟으시리라」(12. 13절).
위대하신 목자시여, 막대와 지팡이를 드시고 우리 앞서 가시옵소서!
가난하고 가련한 자들을 들볶음
109, 1 - 16
이 시(詩)는 다윗이 자기를 박해한 사울을 두 번 살려 주었으나,
마침내 길보아 싸움에서 사울이 죽은 것을 회상하면서 지은 시가 아닌가 싶다.
본(本) 시편에 나오는 저주의 내용은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서 한 것이 아니다.
이 시는 행악자들의 운명을 그린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사도 베드로는 본 시편 8절을 사도행전 1장 20절에 인용하면서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빌어 예언하신 말씀」(행1,16절)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직책일랑 남이 맡게 하자」(8절).
「남이 맡게 하자」는 명령형을 미래형으로 바꾸면 번역이 더 자연스럽다.
히브리 사람들은 명령형과 미래형을 같이 쓴다.
「그들이 우정을 원수로 갚아도 나는 그들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은 선을 악으로 갚고 사랑을 미움으로 보답합니다」(4절).
「나는 그들 위해 기도하였습니다」하는 이야기,
우리는 주의 깊게 마음 속에 새겨야 한다.
원수를 위해 기도한다고 하는 것,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시편 작가의 일념은 하느님께 호소하는 것 밖에 없었다.
이런 기도는 항상 찬미와 감사로 끝난다.
「나는 야훼께 크게 감사드리고, 사람이 모인 곳에서 그를 찬양하리라」(30절).
성부와 더불어 변호자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야훼께서 이 가난한 자의 오른편에 서시어 재판관들의 손에서 목숨을 건져 주셨다」(32절).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우리의 기도를 기도해 주신다.
가난한 자의 해방자
109 17 - 31
「야훼여, 당신 이름에 어울리게 나를 다루소서. 당신의 사랑은 어지시오니
나를 구하소서. 나는 가난하고 가련하오며 내 마음은 속속들이 아프옵니다」(21- 22절).
이 시는 원수를 사랑하고, 남을 용서해 주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과
표면상으로는 반대되는 것 같이 보이나, 실은 그렇지 않다.
앞부분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이 시는 개인적인 복수를 언급한 내용은 아니고
하느님의 명예와 이름을 옹호하는 내용이다.
신심깊은 사람은 선(善)의 승리와 악(惡)의 멸망을 바랄 뿐이다.
「야훼, 나의 하느님, 나를 도와 주소서. 당신 사랑에 어울리게 나를 건져 주소서」(26절).
시편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여기서 본(本) 시편은 도움을 청원하고 있다.
애처로운 어조로 시편 작가는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고 있다.
「손수 살려 주신 것, 그들에게 알리소서. 야훼 당신께서 하신 일임을 그들에게 알리소서」(27절).
이것은 한 개인의 청원이 아니라, 교회의 청원이다.
하느님 다스리심의 의(義)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도록 교회가 청원한 것이다.
이 시(詩)는「찬미」로 시작해서「찬미」로 끝난다.
「부랑배를 내세워 그를 치자. 그 오른편에 고발자를 세우자」(6절).
부랑배의 오른편에 고발자를 내세우자고 하였다면,
가난한 자의 오른편에는 야훼께서 서 계신다고 하였다.
「야훼께서 이 가난한 자의 오른편에 서시어 재판관들의 손에서 목숨을 건져 주셨다」(31절).
야훼께서는 가난한 자를 구하시기 위해서 가난한 자의 오른편에 서 계신다.
「내 옆에 당신 계시면, 흔들릴 것 없사옵니다.
그러므로 이 마음 이 넋이 기쁘고 즐거워 육신마저 걱정없이 사오리다」(시16,8-9절).
하느님의 오른 편에 좌정하신 우리의 사제이신 왕
110, 1 - 7
이 시(詩)는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 그리스도께 적용되고 있다.
주님은 이 시(詩)를 성령의 감화로 다윗이 썼다고 말씀하고 계신다(마태22,43).
이 시는 신약에 많이 인용되고 있다.(마태22,44. 고전15,25. 히브1,3. 13. 5,6. 10. 7,17 21.)
다윗은 메시아를「내 주님」이라고 하였다.
다윗이 메시아를「내 주님」이라고 함으로써 주님의 신성(神性)을 말하고 있음은
논의의 여지가 없다.
주님의 통치를 일러 주는 그분의 왕권은
시온에서 시공(時空)의 극한에까지 미치고 있다.
주님은 원수들이 당신의 발 아래 굴복하기까지 기다리고 계신다.
백성들은「거룩한 품위」(3절)의 옷을 입고 따를 것이며,
이들의 수(數)는 많고(창세13,16. 15,5참조),
젊고 씩씩하여(3절), 주님과의 관계가 매력적이고 좋은 관계이다.
히브리 왕정시대에 있어서는 사제의 직책과 왕의 직책이 서로 분리되었다.
그래 시편 작가는 전형적인「사제 - 왕」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예수님은 보다 오래되고, 지속적인 법통을 이은 사제이시고 왕이시다.
그분릉 확실히 무시(無時)적인 생명의 기초에서 나오신 분이시다.
우리의 주님은 전장(戰場)에서 권능의 왕좌에 오르시어, 뱀의 머리를 바수시나,
우리의 신앙과 사랑의 물을 요구하실 것이다.
「그는 길가에서 시냇물을 마시고 머리를 쳐들리라」(7절).
야훼의 역사(役事)
111, 1 - 10
여기서부터「할렐루야」시(詩)가 몇 개 계속된다.
「할렐루야」라는 말은 「주님을 찬미하라」는 말이다.
본(本) 시와 다음 시는 히브리 문자 순서대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같으나,
시편 111편은 야훼의 역사(役事)를 놓고 명상하면서 찬미와 감사를 말하고 있고
시편 112편은 야훼의 의(義)를 말하고 있다.
이「할렐루야」시는 작가 미상이다.
훌륭한 작품일수록 작가의 이름은 익명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이 좋은 작품을 쓰고, 훌륭한 일을 했을 때,
사람들로부터 받는 칭찬에 무관하기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야훼께서 하시는 일들이 하도 장하시어 그 일들을 좋아하는 사람 모두가 알고 싶어한다」(2절).
우리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좋아하고, 그것들을 톺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자연과학을 어느 정도 대할 줄 알아야 한다.
진리는 하느님 말씀의 법에 감추어져 있다.
「하시는 일은 정의와 진리, 그 모든 법은 진실, 그것이다」(7절).
자연, 섭리, 은총 안에서의 하느님의 역사(役事)는
영구적인 우리의 관심대상이며, 기쁨,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눈은 흑막으로 가려져 있고, 우리의 혀는 무디게 되어 버렸다.
참으로 이 시는 아름답고 값진 시이다.
이 시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넘쳐 흐른다.
당신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하느님은 언제나 먹을 것을 주시며,
당신의 계약을 길이 잊지 않으신다.
「내려 주신 계약을 길이 잊지 아니하시고 당신을 경외하는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5절).
참으로 이 시는 큰 위로를 주는 시이다.
당신을「피난처」로 삼고, 당신께로 피신하는 자들에게
이 시는 큰 위로를 가져다 준다.「야훼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원이요.
그대로 사는 사람이 슬기를 깨친 사람이다.」(10절).
지혜는 순수한 마음의 직관(直觀)에서 나오는 것이다.
야훼를 섬김에서 오는 번영
112, 1 - 10
여기서 축복생활의 두 가지 조건이 언급되고 있다.
첫째는 야훼를 경외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분의 계명을 좋아하는 것이다.
축복의 결과는 이러하다.
후손이 세상의 영도자가 되고, 대대 후손이 축복을 받으며,
부귀영화가 깃들고, 이들의 행실이 영원히 기억되며,
어둠 속의 빛이 되고, 모든 일이 양심으로 처리된다.
이 시(詩)는 오로지 하느님만을 위해서 사는 자의 마음 속에
느끼는 지복(至福)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 주위에는 불의와 비리와 악행이 판을 치고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모닥불이 길손을 안전하게 해 주듯이,
하느님 현존(現存)의 축복스런 감각이 있는 것이다.
「야훼를 믿으므로 그 마음이 든든하여 불행이 온다 해도 겁내지 아니한다.
확신이 섰으니 두려울 것이 없고 마침내 원수들이 망하는 것을 보게 되리라」(7. 8절).
야훼께 신뢰를 갖는다고 하는 것은 마음이 든든하며, 동요됨이 없는 것이다.
모세는 홍해바다에서 이런 마음을 가졌다.
「두려워 말라. 움직이지 말고 오늘 야훼께서 너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가를 보아라.
너희가 오늘 눈 앞에 보는 에집트인들을 다시는 보지 않게 되리라」(출애14,13).
아사도 싸움터에 나가려고 할 때 하느님께 깊은 신뢰를 가졌다(역하14,9 -12).
여호사밧도 아몬 사람들과 싸울 때, 그러하였고(역하20,12)
히즈키야도 아시리아가 쳐들어 올 때, 역시 그러하였다(역하32,6-8).
이러한 생활은 참으로「할렐루야」의 찬미의 노래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복되어라. 야훼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좋아하는 사람」(1절).
자료출처 : 베소라 성서 김정원 토마스 신부
♪ Sicut Cervus(암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시편 42, 1 G.P.da Palestrina
출처 : 하늘의 별처럼 빛나라
글쓴이 : 솔빛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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