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18주간 화요일
마태오 14,22-36
베드로 사도의 흑역사(黑歷史)
‘갈릴래아 호수 퐁당’ 사건은 베드로 사도의 신앙 여정 안에서 감추고 싶고 지우고 싶은
인생의 흑역사(黑歷史)였습니다.
그는 아마도 세상 뜨기 직전까지 이 사건이 떠오를 때면
자다가도 부끄러워 두발로 이불을 마구 걷어차셨을 것입니다.
사도단 일행이 갈릴래아 호수를 가로질러 가려다가 역풍을 만났을 때의 일입니다.
맞바람이 얼마나 강했던지, 파도가 얼마나 거세던지 젖 먹던 힘까지 다 동원해도
배는 항상 그 자리였습니다.
기진맥진 탈진해져 제정신이 아닌 제자들 앞으로 예수님께서 유유히 물위를 걸어오셨습니다.
그 모습에 혼비백산한 제자들은 스승이요 주님, 구원자요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향해
‘유령’이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 상황을 예수님 입장에서 생각해봤습니다.
‘정말이지 웃기는 짬뽕들이로구나. 해도 해도 너무한 녀석들이다.
스승인 나를 보고 유령이라니. 쯧쯧! 아직도 갈 길이 멀었구나.’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모습이 엄청 웃겼습니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제자들을 진정시킵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오 복음 14장 27절)
그 순간 베드로 사도의 모습은 또 어떻습니까?
죄송스럽기도 하고 좀 가만히 있었으면 좋으련만 본성을 억누르지 못해
또 다시 먼저 나섭니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마태오복음 14장 28절)
“오너라!”
하시는 예수님의 허락에 사기충전해진 베드로 사도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물위로 발을 내딛습니다.
장난기가 발동하신 스승님, 그 순간 거센 한 줄기 바람을 일으키십니다.
잔뜩 겁에 질린 베드로 사도는 깊은 물속으로 빠져들어 허우적거립니다.
죽을 지경이 되자 큰 소리를 지릅니다.
“주님, 저를 구해주십시오.”
수제자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조용히 있었으면 기본점수라도 땄을 텐데 괜히 먼저 나서서 점수 다 깎아먹고
자신의 얼굴에 먹칠을 합니다. 수제자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갑자기 불어 닥친 역풍과 높은 파도 앞에 좌충우돌하면서 희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우리 인간의 결핍되고 불완전한 모습과
자연현상마저 좌지우지하시는 전지전능하시고 완전한 하느님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습니다.
갈릴래아 호수에서의 특별한 이 에피소드는 인간의 현실은 얼마나 어둡고 나약한지?
얼마나 허망하며 절망적인지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할 때 인간은 또 얼마나 밝고 강건해지는지?
또 얼마나 영원하며 희망적인지를 알게 합니다.
하느님 없이 인간끼리 뭔가 하려고 할 때는 언제나 혼돈과 무질서,
절규와 아우성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들의 배에 승선하실 때 즉시 다가오는 것이 잔잔한 평화와 치유,
충만한 구원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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