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스크랩]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사순 제2주간 목요일 - 이 고통을 넘어서면

maria4759 2018. 3. 1. 02:14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사순 제2주간 목요일


루카 16,19-31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이 고통을 넘어서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에 등장하는 거지 라자로의 불행은 정말이지 비참하다 못해

혹독했습니다. 온 몸은 종기 투성이었습니다.

그의 주된 일상은 매일 가려운 피부를 박박 긁어대는 것이었습니다.

긁느라고 기운이 다 빠질 정도였습니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저도 피부가 많이 약한 편입니다.

평생 이런저런 피부병에 시달려봐서 라자로의 고초가 손에 잡힐 듯이 다가옵니다.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의 고통, 겪어본 사람만 잘 압니다.

수시로 몰려오는 가려움증, 어떤 때는 공개석상에서 체면상

마음 놓고 긁지도 못할 때의 고통은 더 큽니다.

시원하게 한번 긁고 나면 끝이 아닙니다.


긁은 자리에는 즉시 상처가 생기고 염증이 심해지고...

한번은 밤에 본인도 모르게 완전 박박 긁어대 문제가 커졌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밤에는 예방차원에서 두 손을 꽁꽁 묶고 자기도 했습니다.


라자로의 피부병은 얼마나 중증이던지 종기가 온몸을 덮었습니다.

긁고 치료하느라 가산 다 탕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라자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것을 봤을 때 제대로 된 복합 중증 장애우였습니다.


당시 유다 상류층 사람들 사이에서는 손으로 음식을 먹고 손에 묻은 자국을

빵으로 닦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라자로는 식탁 밑에 대기하고 있다가 부자가 사용하고 난 휴지 던지듯이 사용하고 난 빵조각을

휙 던지면 기다렸다는 듯이 주워 먹었습니다.


그의 옆에는 몰려온 개들도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떨어진 빵 주워 먹는 것도 개들과 경쟁을 해야 했습니다.

개들조차 라자로를 무시하며 그의 종기를 마음 놓고 핥았습니다.

그는 개와 동급, 아니 개만도 못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불행하고 비참한 인생이 어디에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한 인간 존재를 실감나게 설명하시려고

라자로라는 가상인물을 설정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상에서 가장 불행했던 라자로였는데, 천상에서는 가장 행복한 얼굴로 변화됩니다.

지상에서 한 60년 잠시 불행했던 라자로는 이제 불행 끝 행복 시작입니다.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얼굴로 아브라함의 품에 편안히 안겨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에서 천년 만년 아니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지상에서 한 60년 잠시나마 행복에 겨웠던 부자는 이제 행복 끝 불행 시작입니다.

지옥의 타는 불길 속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 속에서 천년 만년 영원히 고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릇된 인생관, 왜곡된 고통관, 어처구니없는 내세관을 지니고 있었던 바리사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경고는 준엄하기만 합니다.


바리사이들의 사고방식은 예수님의 사고방식과는 정반대였습니다.

그들은 지상에서의 비참을 하느님의 저주로 봤습니다.

지상에서의 가난은 하느님의 경고로 생각했습니다.

누군가가 지상에서 쌩고생하면 하느님의 벌을 받았다고 여겼습니다.


반대로 지상에서의 복락은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화만사성, 만사형통, 승승장구하는 사람만이 하느님 편의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라자로와 부자의 비유는 하느님의 판단이 우리 인간의 판단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지상에서의 장막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세상이 막을 올리면

전혀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광경이 펼쳐질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생활 기간 동안 예수님께서 여러 차례 강조하셨던 바입니다.

그날이 오면 첫째가 꼴찌가 될 것입니다.

반대로 꼴찌가 첫째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속적인 겸손입니다.

내 손에 들어있다고 다 내 것이 아니기에 남는 바를 나누는 정신도 중요합니다.

극단적 자기중심주의에서도 벗어나야겠지요.


오늘 내 처지에서 하느님께서 가장 바라시는 바가 무엇인지 찾아야할 것입니다.

이 지상생활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머지않아 다가올 또 다른 세상에도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현실의 고통, 분명히 의미와 가치가 있음을 알고 그것을 찾아나가는 노력도 중요합니다.

끔찍한 고통의 한 가운데를 걸어가면서 반드시 이 고통에는 끝이 있음을,

이 고통을 넘어서면 하느님 아버지의 충만하고 따뜻한 위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굳게 믿는 일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가톨릭 사랑방 catholicsb



      출처 : 가톨릭 사랑방
      글쓴이 : 수풀孝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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