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부활 제3주일
복 음 : 루카 24,35-48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평화
병자성사나 봉성체를 위해 병원에 다녀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저까지 몸 상태가 안 좋아집니다.
환자분들을 만나고 있노라면 저까지 덩달아 어딘가 아픈 것 같고, 불안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병실 특유의 분위기 때문이겠지요.
다들 직면한 최대과제(투병생활과 쾌유)와 싸우느라 힘겹습니다.
환자나 그 가족들의 고통도 만만치 않습니다.
신경이 날카로워지면서 감정 기복도 심해집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묵묵히 근무하시는 병원종사자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정말 특별한 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 형제분을 만났는데, 저는 정말이지 깜짝 놀랐습니다.
현재 상황이 상당히 비관적이고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이 얼마나 의연한지 모릅니다.
자신의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저 같았으면 불안해서 죽을 지경인 그 순간에 마치 소풍 나온 얼굴로 그렇게 지냅니다.
모든 것을 초탈한 신선 같습니다.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습니다.
오히려 찾아간 저를 걱정하고 격려합니다.
귀가 길에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그토록 거센 풍랑 앞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비결이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그분이 하느님과 맺고 있는 굳은 결속력 때문이겠지요.
그분이 온전히 하느님 품안에 머물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지상에서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 영원한 안식처가 있음을
잘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하느님께서 그분 삶 중심에 자리 잡고 계시기에,
그 모진 고통도 기꺼이 참아내고 있는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대화 사이로 살며시 끼어드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 앞에서 아직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던 제자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의 감정은 참으로 복잡 미묘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높이 매달리셨을 때, 비겁하게도 멀리 달아났던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죄책감, 수치심, 부끄러움 같은 감정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건네신 말씀에 귀를 기울여보십시오.
놀라울 뿐입니다. 원망의 말씀도 아닙니다. 질책의 말씀도 아닙니다.
그 말씀은 오직 연민과 자비와 위로와 격려로 뭉쳐진 희망의 말씀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에게 건네신 평화의 인사를 묵상하면서
거센 풍랑 앞에서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참 평화를 꿈꾸지만 여의치 않습니다.
잔잔한 호수 같은 평화를 염원하지만 갖은 스트레스의 원천인 걱정거리들로
우리네 삶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되풀이하고 있는 근심걱정들을 분석해 본 결과 40%는
현실에서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일이라고 합니다.
30%는 이미 지난 일, 되돌릴 수 없는 일을 걱정한답니다.
12%는 우리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사소한 일이랍니다.
10%는 아직 불확실한 일에 대한 걱정이라고 합니다.
최종적으로 남게 되는 8%만이 우리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 되겠습니다.
그 8% 마저도 우리의 평화를 바라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 온전히 맡기고 싶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한 평화의 사도로 존재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일은
육신보다는 영혼에 우위성을 두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더 자주, 그리고 더 많이 버리고자 다짐합니다.
더욱 자주 떠나야겠습니다. 이기심을 버리고, 욕망도 버리고, 슬픔조차 버리고,
버렸다는 그 마음조차 버릴 때,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진정한 평화의 기반이 마련되겠지요.
버리고 버려서 더 이상 버릴 것이 없어지는 그 순간,
그 버린 공간에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참 평화가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만물, 모든 존재, 매순간 사건들은
그 자체로 은혜로움과 감사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결국 두려움이 극복된 진정한 평화의 원천은 우리 주님이십니다.
고통과 절망, 두려움과 의혹 그 한가운데를 지나가면서도 오직 주님께만 전적으로 의지할 때,
그분께 우리 존재 전체를 내어맡길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완벽한 평화를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 어딜 가도 서정적 영화나 배경이 아름다운 드라마를 보는 듯한 완벽한 평화란 없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우리 삶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 굳건히 자리 잡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놓는 순간 우리에게 다가오는 평화입니다.
그분이 계심으로 인해, 그분이 우리 인생의 중심이 됨으로 인해
누리게 되는 위로, 그것이 참 평화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2018,4,16 부활 제3주간 월요일 - 공동체적 회개가 필요한 시대 (0) | 2018.04.16 |
---|---|
[스크랩]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2018,4,15 부활 제3주일 - 자상하고 친절하신 하느님 (0) | 2018.04.16 |
[스크랩]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부활 제2주간 토요일 - 항복과 행복의 차이 (0) | 2018.04.15 |
[스크랩]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부활 제2주간 금요일 - 흐뭇해 하시는 하느님 (0) | 2018.04.13 |
[스크랩]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부활 제2주간 목요일 - 진리는 자신의 아름다운 나신(裸身)을 (0) | 2018.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