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32주일
마르코 12,38-44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봉헌
지난해 말 저희 수도원을 찾아오셨던 할머님들 얼굴이 떠오릅니다.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는 듯 다들 싱글벙글한 얼굴이었습니다.
대표격되시는 할머님께서 뭔가를 슬쩍 제 손에 쥐어주시면서
어렵사리 이렇게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신분님, 요거이 너무 적어서 부끄러운디요,
우리 노인네들이 여그, 불쌍한 아그들 생각하면서 매월 쪼깨씩 십시일반으로 모은건디,
요긴하게 써주시요."
참으로 고맙고도 송구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 정성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보아하니 다들 넉넉한 분들이 아닌 것이 분명하고,
손자손녀들 용돈도 주셔야하고, 노인대학이나 계모임도 다니셔야 하고,
돈 쓰실 곳도 많을 텐데 말입니다.
일년 내내 아끼고 아껴 건네시는 그 '거금'을 도저히 받을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할머님들, 그 예쁜 마음 제가 잘 접수했습니다.
받은 걸로 할 테니, 이 돈은 도로 집어 넣으시고 차나 한잔 하고 가시지요."
할머님들은 절대 안 된다며 펄쩍 뛰셨습니다.
천사 같은 할머님들 얼굴을 바라보면서 저는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우리 수도자들이 정말 잘 살아야겠구나.
절대로 헛된 곳에 돈 쓰지 말아야겠구나.
이런 훌륭한 분들 마음을 늘 기억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구나.'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셨습니다.
이윽고 부자들이 헌금을 하고자 도착합니다.
큰 액수를 헌금하기에 당당합니다.
헌금 담당 사제의 눈앞에 수표를 흔들어 보이면서 '큰 것 한 장이요' 외쳤습니다.
자랑스럽게 헌금함에 돈을 넣었습니다.
이어서 가난한 과부가 등장합니다.
그 시대에는 과부로 산다는 것은 최하위 계층의 삶을 산다고 보면 확실합니다.
과부가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기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도 오래였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손을 벌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었습니다.
하루하루 살길이 막막했던 과부였습니다.
굶기를 밥 먹듯이 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헌금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부는 신앙심이 대단한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평소에 헌금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하느님 앞에 무척이나 송구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오랜만에 작은 돈이 생겼습니다.
그 순간 여러 가지 생각들이 그의 머릿속을 오고갔습니다.
'저 어린 것들, 그동안 용돈 한번 제대로 주지 못했는데,
이 돈을 아이들에게 용돈 쓰라고 줄까?
아니지, 오랜만에 고기라도 조금 사서 영양보충을 좀 할까?'
그러나 최종적으로 그는 성전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작은 돈, 그러나 과부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큰 돈(동전 두 닢)이었습니다.
그의 모든 정성, 그의 삶 전체가 깃든 소중한 돈을 아주 정성껏,
온 마음을 다해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이러한 과부의 전적인 봉헌을 예수님께서는 높이 평가하시며 극찬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가끔씩 봉헌행렬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신자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입니다.
마치 적선이라도 하듯이 봉헌금을 툭 던져놓고 돌아서는 분이 있는가 하면,
아주 경건한 얼굴로 정성껏 봉헌금을 바치는 분도 있습니다.
봉헌금 액수 역시 다양합니다.
봉헌금 정리하는 분들이 깜짝 놀랄 정도의 고액환 수표를 봉헌하시는 분 있는가 하면,
천주교가 1000주교인줄 아시는지, 아니면 천주교가 천원권의 고향인줄 아시는지
죽어도 천원짜리만 봉헌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어린양께서 배춧잎 좋아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는지
꼬박꼬박 만원짜리를 봉헌하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떼구르르' 소리가 다 들리는 동전을 봉헌하는 분도 계십니다.
봉헌금 액수가 커야 된다는 말이 절대로 아닙니다.
봉헌금 액수가 살림 형편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집에 당장 먹을 양식이 없음에도 빌려서라도 봉헌금을 내려한다면
너무도 어색한 일일 것입니다.
봉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정성입니다.
내게 있는 가장 소중한 것,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결실 중에서 가장 값진 것,
내 인생, 내 젊음, 내 삶 전체를 하느님께 바친다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합니다.
무성의한 봉헌, 마지못한 봉헌, 습관적 봉헌, 의무감에 의한 봉헌이 아니라
자발적 봉헌, 잘 준비된 봉헌, 정성스런 봉헌, 사랑이 담긴 봉헌이야말로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봉헌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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