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3주간 토요일>(2014. 5. 10. 토)(요한 6,60ㄴ-69)
<베드로의 확신, 유다의 냉담>
'생명의 빵'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 사람들은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요한 6,60)"
라고 불평했고, 예수님 곁을 떠나버렸습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사도가 아닌 제자들이 거의 다 그때 떠나버렸고
열두 사도만 예수님 곁에 남았다고 전하고 있습니다(요한 6,66-67).
(실제로는 열두 사도만 남은 것은 아니고,
사도가 아닌 제자들 가운데에서도 일부는 남았고, 여자들도 남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떠나는 사람들을 붙잡지 않으셨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려고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믿음은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요한 6,67)" 라는 말씀은
"너희도 떠나고 싶으면 떠나라." 라는 뜻이기도 하고,
'생명의 빵'에 관한 말씀은
이해해야 하는 말씀이 아니라 믿어야 하는 말씀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믿음은 지식이 아니라 결단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사도들을 대표해서 대답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요한 6,68-69)."
베드로 사도가 '생명의 빵'에 관한 말씀을 알아들었을 수도 있고,
알아듣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지금 베드로 사도의 말은
자기가 알아들었든지 못 알아들었든지 간에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라는 말은
"예수님만이 그리스도이십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예수님만을 메시아라고 믿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라는 말은,
자기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들었든지 못 알아들었든지 간에
그 말씀은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이라고 믿는다는 뜻입니다.
"스승님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는 말은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 라는 뜻이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라는 말은
"저희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그냥 믿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굳게 믿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확신은 인생 전체를, 또 목숨을 완전히 바칠 수 있는 '신념'입니다.
우리도 믿으려면 그렇게 확신과 신념 수준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5월 10일의 복음 말씀의 내용을 보면,
사도들의 '확신'을 전하면서도 유다의 배반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요한 6,64)."
열두 사도는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떠나지 않았는데,
열두 명이 다 똑같이 믿은 것은 아니고,
유다는 안 믿었는데도 남았다는 것입니다.
유다가 처음부터 안 믿은 것은 아니고 중간에 믿음을 잃었을 텐데,
그는 믿음을 잃었으면서도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계속 곁에 남아 있었습니다.
(배반하기 위해서 남은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유다는 안 떠난 것이 아니라 못 떠났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속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그는 자기가 명색이 사도인데 믿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그동안 계속 예수님과 함께 살던 생활을 갑자기 버리고 떠나는 것이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특별히 갈 곳이 없어서 그냥 남아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마음은 이미 떠났지만 몸은 떠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유다는 배반자가 되기 전에 먼저 냉담자가 되어 있었고,
그 상태에서 배반을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몸이 떠나지 않았어도 마음이 떠났다면 냉담자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유다 자신은 자기가 믿음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알고 있었다면(의식하고 있었다면) 그가 예수님 곁에 남은 것은 '위선'이고,
예수님과 동료들을 속인 일이 됩니다.
그러나 의식하지 못했고, 자기는 믿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면?
의식하지 못해도 믿음을 잃게 되면 의심만 더욱 커지게 되고,
또 사랑도 식어버리고,
그러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들이 전부 다 마음에 안 들어서
계속 불평하고 비판하고(요한 12,5) 의심했을 것입니다.
유다는 악마에게 사로잡힌 사람이었고(요한 13,2),
그래서 그는 사실상 사도단 내부로 침투한 악마와 같은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악마가 교회나 개인을 공격하고 유혹할 때,
외부에서 할 수도 있고, 내부에서 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유혹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악마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마르 9,29).
유다도 자기가 냉담 상태에 빠졌음을 솔직하게 예수님께 고백하고
도움을 청했다면, 그렇게 멸망의 길로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다가 배반하게 될 것을 아시면서도 그를 내버려 두신 것은
사실은 그가 스스로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기를 기다려 주신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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