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불멸의 인연
출장길에 만난 박범신 작가의 ‘소금’(한겨레 출판)에 반해 책을 손에서 뗄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은 뒷전인 채 가족들 부양하느라 몸에서 소금기가 다 빠져나간
우리 아버지들의 슬픈 현실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가족이라는 미명하에 서로의 몸에 빨대를 꽂고 경쟁하듯 빨아대는 비정한 오늘날
우리 가족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아스라한 첫사랑의 추억이며
한때 보송보송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도 꿈속처럼 그려내고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전무후무한 우리나라의 압축적 경제 성장의 결과는 참혹할 정도입니다.
물질만능주의가 은연중에 우리 가정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가족 구성원들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존경이나 사랑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그저 그가 얼마나 재력이나 생산력, 영향력을 갖추고 있는가가 가장 큰 평가의 잣대입니다.
소금은 우리 사회의 참으로 비정한 현실을 정확하게 꼬집고 있습니다.
평신도 주일을 맞아 우리 가족 구성원들의 의식구조를 진지하게 한번 성찰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오늘 나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입니까?
뒷방을 차지하신지 오래인 할머니는 내게 무슨 의미입니까?
백번 깨어나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평생 장애를 안고 태어난 내 자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때로 너무 버거워 도망가고 싶은 질긴 가족이란 이 인연은 무엇입니까?
다른 무엇에 앞서 ‘가족’에 대한 환상을 깨는 작업이 시급한 것 같습니다.
다들 꿈꿉니다.
빌딩이며 대지며 부동산을 넉넉하게 소유한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아버지,
퇴직 걱정 없고 연봉이 탄탄한 산처럼 든든한 아버지,
병원은 한평생 안가도 되는 건강한 아버지,
자신은 뒷전이고 언제나 가족들을 위해 끝까지 희생하는 아버지,
부인을 물론 자녀들과 눈높이를 맞출 줄 아는 친구 같은 아버지...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도 한 나약한 인간 존재일 뿐입니다.
때로 너무 외롭고 서러워서 홀로 돌아서서 흐느끼는 측은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선호하는 어머니는 또 어떤 어머니입니까?
대체로 기대치가 너무 높습니다.
이왕이면 재벌가의 셋째 딸로 태어난 어머니,
지적이고 고상하고 다정다감한 어머니,
나이가 들어도 미모와 우아함을 잃지 않는 세련된 어머니,
잠언에서 칭송하는 여인처럼 한 손으로는 물레질하고 다른 손으로는 실을 잣는
부지런한 어머니,
그러면서 자영업을 운영하며 남편보다 훨씬 연봉이 높은 어머니,
결국 신사임당을 쏙 빼닮은 어머니를 원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살기에 바쁜
또래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어머니입니다.
가족은 서로 견뎌주고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냉혹한 현실에 떨고 있는 서로를
서로의 체온으로 덥혀주라고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인연입니다.
가족은 상대 안에 긷든 작은 가능성을 찾아주고
서로 격려하고 지지하면서 성장시키라고 하느님께서 연결시킨 다리입니다.
가족은 서로의 무거운 십자가를 덜어주고 서로를 위해서 헌신하면서
서로를 구원하라고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입니다.
소금 말미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군가와 불멸의 관계를 갖고 싶다면, 관계를 맺지 말게.
그 수밖에 없어. 사랑이 훼손되지 않으려면!”
참으로 긴 여운을 남기는 말이었습니다.
이 지상에서 우리가 맺는 관계는 참으로 제한적입니다.
모든 인연이 다 그런 것이 아니지만 그 끝이 참으로 허탈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노력이 우리의 인연을 보다 한 차원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아닐까요?
육적인 인연에서 영적인 인연으로,
세속적인 관계에서 하느님 안에서의 관계로,
필멸의 인연에서 불멸의 인연으로...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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