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스크랩]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사순 제3주간 화요일 - 나도 살고 그도 살고

maria4759 2018. 3. 6. 08:35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사순 제3주간 화요일

마태오 18,21-35


나도 살고 그도 살고


사도단을 대표해서 수제자로 살았던 베드로였습니다.

수제자의 역할이 어떤 것이었을까요?

한 학급의 반장 비슷한 역할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사도단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 예수님의 의중을 다른 제자들에게 전달하는 역할,

제자들의 욕구를 종합해서 예수님께 전하는 역할.

당시 사도공동체는 철저하게도 가족 같은 구조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이 지방 저 지방 떠돌아다니면서 의식주는 물론 생사고락을 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유다 사도의 도움을 받아서 먹고 자는 문제, 살림살이 문제 등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제반 문제를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수제자로 살아가다보니 본의 아니게 제자단 가운데 미운 사람도 생겼을 것입니다.

그 형제는 혹시 나중에 배반자가 된 유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자신을 ‘애제자’로 여기면서 수제자 베드로와 늘 경쟁, 대립관계로 서있던

요한 사도였을지 모르겠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얼마나 밉고 괘씸하던지

여러 번 다투기도 하고 감정이 폭발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도저히 홀로 해결이 안 되다 보니 예수님께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개인 생각에서 이정도면 충분하겠지 하고 생각하며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왜 베드로 사도는 하필 7이라는 숫자를 내세웠을까요?

일곱 번이면 베드로 자신에게 있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큰 양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일곱이라는 숫자는 충만과 완성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숫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이상을 요구하십니다.

일곱 번으로 부족하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다 큰마음을 지닐 것을 요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용서는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임을 강조하십니다.

우리가 이웃을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 내면에 큰 악성 종양을 하나 달고 산다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그 종양은 우리의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까지 훼손시킵니다.

우리는 그 종양으로 인해 이웃도 괴롭고 자신도 괴로운

일종의 ‘지옥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 인간의 실상을 잘 파악하고 계셨던 예수님이셨기에

조금은 무리가 되는 것 같은 강한 요구를 우리에게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삼시 세끼 밥 먹듯이, 매 순간 숨을 쉬듯이,

그렇게 우리 이웃을 용서함을 통해 나도 살고 그도 살며

하느님께는 영광을 드리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가톨릭 사랑방 catholicsb



      출처 : 가톨릭 사랑방
      글쓴이 : 수풀孝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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