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성주간 수요일
마태오 26장 14-25절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눈감아주시는 하느님
‘방황’과 ‘배신’이 전문인 한 아이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아이였습니다.
그렇게 전국산천을 ‘싸돌아’ 다녔으면 방황도 이제 신물이 날 텐데,
오히려 갈수록 방랑기는 심해졌습니다.
그토록 배신에 배신을 때렸으면 미안한 마음에서라도
이제 제 갈 길을 좀 걸어가 주면 좋을 텐데, 조금도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다 포기했던
그 아이의 방황과 배신이 어느 순간 기적처럼 잦아들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가 분석을 해봤더니 그 배경에는
‘그 누군가’의 그 아이를 향한 한없는 인내, 간절한 기다림, 시도 때도 없이 흘리던
피눈물이 있었습니다.
수난복음을 묵상할 때 마다 드는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인간의 악행과 몰상식이 이렇게까지 심할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입니다.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어떻게 자신들을 살리러 오신 예수님, 그렇게 은혜를 베푸신 하느님을
어떻게 이렇게까지 무참하게 짓밟을 수 있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묵상의 결과는 그런 생각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결론은 언제나 이런 것입니다.
‘이토록 하늘을 찌르는 우리 인간의 배신과 죄악, 철저한 타락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끝까지 기다려주신다’는 결론입니다.
그렇게 당하셔 놓고도 또 다시 우리 인간에게 새 출발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팔을 벌리고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정말 ‘바보 천치 같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모습이
오늘 복음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공동체 안에 흐르던 기류에 언제나 초점을 맞추고 계셨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측을 못했다할지라도 예수님만큼은 유다의 부정한 행위(공금의 착복)에 대해서도
잘 파악하고 계셨을 것입니다.
유다 내면에 깃들어 있던 어두운 그림자, 복잡한 심리상태도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겠습니까?
비록 빗나갔지만 유다도 엄연히 당신의 제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예수님 보시기에 너무도 불쌍한 유다였습니다.
시시각각 죽음과 멸망의 길에 다가서고 있는 유다가 너무나 가련해서
밤잠을 못 이룰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최후의 방법까지 동원해서
그의 배신을 막아보려고 애를 쓰셨습니다.
만찬석상에서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나머지 예수님께서는 말씀조차 제대로 잊지 못하십니다.
마지막 순간이지만 또 다시 회심의 기회를 주시려는 듯 예수님께서 말문을 여십니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이 예수님의 말씀 안에는 정말 놀라운 복선 한 가지가 깔려있습니다.
이미 유다의 속마음을 훤히 다 파악하고 계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그 순간 저 같았으면 제 성격상 정확하게 유다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유다야, 이제 그만해, 너 정말 끝까지 이럴래?”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유다의 이름을 거명하지도 않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조금도 눈치 채지 못하게 처신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유다의 회심을 기대하셨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를 무시하지 못하게 배려하셨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배신자’가 누구인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대단하신 하느님이십니다.
정말 속도 없는 하느님이십니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참아낼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렇게까지 배신자에게 기회를 줄 수 있습니까?
그러나 끝까지 시치미를 떼는 유다였습니다.
뻔뻔스럽게도 그도 역시 다른 제자들처럼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나이가 조금씩 들어갈수록 하느님이 너무 좋아집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그 숱한 배신과 악습,
그 오랜 죄악의 나날에도 불구하고 진노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기다려 주시는 하느님이시기에
그리도 좋은 것입니다.
오점으로 얼룩진 우리의 지난날을 낱낱이 드러내시지 않으시고
끝까지 눈감아주시는 하느님이시기에 그리도 좋은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에 순간순간 정확하게 대응하지 않으시는 하느님,
우리의 크나큰 실수와 과오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문서를 통해 명단을 발표하지 않으시는 하느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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