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고등학교 2학년 늦가을쯤이었을 게다. 미션 스쿨인 대광고등학교에서는 ‘성경’과목이 일주일에 한 시간 있었는데, 갓 오신 젊고 검은색 뿔태 안경 너머 눈초리가 날카로워 보이는 교목 선생님께서 수업에 들어와 한마디 말없이 칠판에 웬 시 하나를 옮겨 적으셨다. 그때는 제목조차 몰랐던 이 시는 내 생애 최초로 가슴에 화살같이 날아와 박힌 충격적인 시였다. 얼마 후 더 이상은 교목 선생님을 뵐 수 없었는데, 신학을 공부하러 총총 유학을 떠나신 걸로 추측된다. 그리고 다분히 감상적인 내 취향에 딱 들어맞는 이 시가 온 국민의 애송시인 ‘서시’를 쓴 윤동주 시인의 작품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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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희전문학교 입학 무렵의 윤동주 시인 |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시인, 1917-1945)
그때까지 아무런 주체적 사고나 삶에 대한 고민 없이 철부지 동심(童心)의 세계에서만 맴돌며 살았던 내게 운명같이 다가온 이 시를 계기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난생 처음의 정신적 유희가 시작되었다. 방과 후 버스 뒷좌석에 멍하니 앉아 종점까지 갔다 오고, 집 부근의 낙엽 쌓인 태릉 오솔길을 왠지 쓸쓸한 마음으로 산책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그러면서 자의식이 싹터 ‘나’라는 존재를 어설프게나마 들여다보며 내 자신이 가엾고 밉고 또 그리워지는 낯선 정신세계에 서서히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2.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윤동주 시인이 마냥 좋고 또 시인이 연희전문학교(지금의 연세대학교) 영문과 졸업생이라는 걸 곁들여 알게 된 나는 졸업 때까지 이과반에 머물러 있었으면서도 문과로 입학시험을 치러 운이 좋게도 영문과에 입학했다. 당시에는 필기고사와 별도로 면접이 있었는데, 취미가 뭐냐는 면접관 교수님의 질문에 “제 취미는 사색입니다”라고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던 기억이 새롭다.
연세대학교 교정 한쪽에는 허름한 나무 벤치 몇 개와 함께 윤동주 시비가 고즈넉이 서 있었는데, 세월의 비바람 속에 흐릿해진 시 하나가 새겨져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부끄럽기 짝이 없는 고백이지만, 그리도 멋져 보이고 좋아했던 윤동주 시인의 직계 후배가 되는 행운을 누리고서도, 나는 문과대학에서 5분이면 너끈히 닿을 만큼 가까이 있는 시비를 거의 찾지 않았다. 수업 빼먹기를 하찮게 여길 만큼 당시의 무책임한 낭만적 캠퍼스 분위기에 휩쓸려 정신없이 노느라 바빠서 그랬을 거다.
하지만 대학 3학년을 마치고 현역으로 입대해 1981년 4월 제대한 후, 예전과 전혀 다른 느낌의 캠퍼스 분위기에 적지 않게 놀랐다. 군대 안에서는 북한 간첩이나 불순분자의 사주를 받아 전라도 광주에서 일어난 폭동으로만 알았던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의 실체적 진실에 소스라치게 눈떠 갓난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듯 역사와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이 조금씩 생기면서 내 삶도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었다.
마음 통하는 몇몇 친구들과 술자리를 자주 갖고 더러 울분을 토하면서 사회과학의 기초를 익히며 1년 가까이 보내다, 1982년 4학년에 복학해서는 거의 모든 수강 시간표를 신학과 과목으로 채우면서 신학에 입문했다. 알량한 신앙으로 습관적으로 교회에 다니다가 맨 처음 학문으로 접하는 신학이 꽤 신선하고 흥미롭게 느껴졌는데, 특히 꼼꼼히 가르치시는 박준서 교수님의 ‘예언서 강의’를 통해 성경이 고리타분한 책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도 펄펄 살아 있는 하느님의 말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학자가 되려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일부 친구들과 대기업에 취직하는 대다수 친구들과 달리 나는 감리교 신학대학원에 진학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신학을 선택한 게 과연 최선이었나?’ 하는 의문과 아쉬움이 더러 남지만, 예수, 특히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가 내 끝없이 방황하는 삶의 화두(話頭)로 서서히 자리 잡아가던 당시는 신학의 길에 접어들기로 결심하기까지 별다른 고민이 없었다.
그리고 3년 동안의 대학원 시절에도 대학 때와 마찬가지로 습관처럼 방황하면서도 틈틈이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주문처럼 외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주문의 행간(行間)에 담긴 깊은 뜻을 안고 구체적으로 고민하지 않고 어설프게 윤동주 시인 흉내를 냈던 모양인데, 그래도 이 거듭된 주문 덕분에 방황의 늪에 빠져 있으면서도 내 삶의 의미를 나름대로 지킬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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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냐 Benedict Study House 성당내 예수 ⓒ황동환 | 3.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 버렸나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 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이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不死鳥여
해와 달이 곤두박질치고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엉터리로 우뚝 솟아있을 때 그러나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아아, 자유의 깃발이여 살과 뼈로 응어리진 깃발이여
아아, 우리들의 도시 우리들의 노래와 꿈과 사랑이 때로는 파도처럼 밀리고 때로는 무덤을 뒤집어쓸지언정 아아, 광주여 광주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무등산을 넘어 골고다 언덕을 넘어가는 아아, 온몸에 상처뿐인 죽음뿐인 하느님의 아들이여
정말 우리는 죽어버렸나 더 이상 이 나라를 사랑할 수 없이 더 이상 우리들의 아이들을 사랑할 수 없이 죽어버렸나 정말 우리들은 아주 죽어버렸나
충장로에서 금남로에서 화정동에서 산수동에서 용봉동에서 지원동에서 양동에서 계림동에서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아아, 우리들의 피와 살덩이를 삼키고 불어오는 바람이여 속절없는 세월의 흐름이여
아아,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구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넋을 잃고 밥그릇조차 대하기 어렵구나 무섭구나 무서워 어쩌지도 못하는구나
(여보, 당신을 기다리다가 문밖에 나가 당신을 기다리다가 나는 죽었어요......그들은 왜 나의 목숨을 빼앗아갔을까요 아니 당신의 전부를 빼앗아갔을까요 셋방살이 신세였지만 얼마나 우린 행복했어요 난 당신에게 잘 해주고 싶었어요 아아, 여보! 그런데 난 아이를 밴 몸으로 이렇게 죽은 거예요 여보! 미안해요, 여보! 나에게서 나의 목숨을 빼앗아가고 나는 또 당신의 전부를 당신의 젊음 당신의 사랑 당신의 아들 당신의 아아, 여보! 내가 결국 당신을 죽인 것인가요?)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을 뚫고 나가 백의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다시 넘어오는 이 나라의 하느님 아들이여
예수는 한번 죽고 한번 부활하여 오늘까지 아니 언제까지 산다던가 그러나 우리들은 몇 백 번을 죽고도 몇 백 번을 부활할 우리들의 참사랑이여 우리들의 빛이여, 영광이여, 아픔이여 지금 우리들은 더욱 살아나는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튼튼하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아아, 지금 우리들은 어깨와 어깨 뼈와 뼈를 맞대고 이 나라의 무등산을 오르는구나 아아, 미치도록 푸르른 하늘을 올라 해와 달을 입맞추는구나
광주여 무등산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꿈이여 십자가여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젊어져 갈 청춘의 도시여 지금 우리들은 확실히 굳게 뭉쳐 있다 확실히 굳게 손잡고 일어선다
(김준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광주민중항쟁이 벌어진 직후 당시 고등학교 교사였던 김준태 시인이 쓴 이 시야말로 오늘 이 땅에서 십자가의 의미를 감동적으로 풀이한 절창이요 ‘문학적 신학’의 진수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신들린 듯 이 시를 썼을 시인의 폭발적인 예언자적․역사적 상상력에서 표출된 대로, 예수운동은 ‘그때 거기’의 유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도 활화산같이 봇물같이 터지는 현재진행형의 사건이 아닌가. 광주민중항쟁은 1980년 당시 한반도의 모순의 근본적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집단적 십자가 사건’이 아닌가.
이 시를 접하고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 못지 않은 충격을 느끼면서, ‘앞으로 광주민중항쟁을 신학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한 사람의 평신도 신학자로서의 나의 엄숙한 역사적 과제’라고 감히 생각했다. 그래서 ‘역사적 예수’를 오늘 이 땅에 되살리는 내용의 잡문을 적지 않게 썼지만, 고민이 천박하고 신학적 상상력을 연마하는 일에 게을러 이 산뜻했던 다짐은 여태까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서너 해 전부터 예수와 관련지어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시들을 열심히 모으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 다짐에 다시금 모닥불을 지펴왔다. 그리고 박제화된 교리와 역사의식 없는 공허한 신앙고백에 붙들려 생명력을 잃어버린 예수운동을 되살리는 한 가지 방법은 신학에 문학을 접목시켜 문학적 상상력으로 예수와 성경을 다시 읽는 일이요, 관념적 이성 일변도의 무미건조한 신학을 깊고 예리한 감성의 문학적 상상력으로 재해석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수는 한번 죽고 한번 부활하여 오늘까지 아니 언제까지 산다던가 그러나 우리들은 몇 백 번을 죽고도 몇 백 번을 부활할 우리들의 참사랑이여“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잇대어 “우리들”의 죽음과 부활을 사자후(獅子吼)로 토하는 시인의 기막힌 상상력을 그저 감탄하고 부러워하기만 할 게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사와 사제들은 물론이요, 이 땅의 모든 평범한 신자들도 이 상상력을 제각기 다양한 형태로 기를 수 있고 또 길러야 한다. 시심(詩心) 없는 신심(信心)은 딱딱하게 굳어서 먹을 수 없는 빵과 같기 때문이다.
4.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 ‘십자가’)
“괴로웠던”, 그러나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 역설적이고 일견 모순된 표현인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시인의 말이 맞다. 참된 행복은 “십자가”를 통해 온다는 것은 신앙의 역설인 동시에 신앙과 종교를 떠나 만인에게 해당되는 게 아닌가. 십자가 없는, 고난 없는 행복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 내가 지금까지 만 사십 년 넘게 신앙생활을 했으면서도 행복하다고 느끼기는커녕 이따금 ‘차라리 예수를 몰랐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마저 슬그머니 고개를 쳐드는 건 예수 때문이 아니라 내 자신 때문이다. 예수를 마음으로만 좋아했을 뿐,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는” 일에는 너무 무관심했고 나태했던 나의 허울뿐인 신앙생활 때문이다.
이제 오십 중턱을 훌쩍 넘은 나이에,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너는 정말 예수를 사랑하는가? 예수처럼 행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예수처럼 살면 되지. 하지만 너는 그럴 만한 순수한 용기와 굳센 결의가 있는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겉모습만 신자인 체하고 알맹이는 예수와 무관한 채로 살아갈 것인가?’
두려운 질문이다. 솔직히, 죽을 때까지 예수를 한결같이 좋아하고 사랑할 자신이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어쩌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나는 예수를, 신앙을, 기독교를, 신학을 내 삶의 허울 좋은 장식품으로 삼을지언정 본질적으로는 예수와 무관한 삶을 살아갈지도 모른다. 예수는커녕 아직도 나는 나 자신도 잘 모른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용기 있게 고백하고 싶다. ‘내가 당신, 예수를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했던 것 아시죠? 당신이 나의 영원한 애인이요 정신적 지주라는 것 아시죠? 이제 얼마쯤 남은 나의 생애를 당신을 더 깊이 알고, 당신을 더 진실하게 닮아가고, 당신의 이름을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일에 아낌없이 바치게 하소서.’ 갈릴리의 목수가 다시금 사람이 사는 거리로 오고 있습니다. 모든 나라 나라에, 모든 시대 시대에 그는 '인간'이라는 집을 짓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우리들은 그가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것을 듣게 됩니다. 그는 문마다 두드리며 말씀합니다. “놀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요? 사람을 만드는 목수인 나는 수많은 일꾼이 필요합니다.” (힐다 스미스, ‘갈릴리의 목수’)
정연복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 가난한 사람의 눈으로 읽는 성서>, <함께하는 예배>, <오늘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인가?>,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신 예수> 등을 쓰고 <신비주의 신학>, <아메리카, 파시즘, 그리고 하느님> 등을 번역했으며 <한국의 기독교 명시>, <세계의 기독교 명시> 등을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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