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만난 주님
해발 760미터나 되는 고지대 도시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요르단 강 조금 못 미쳐 예리코라는 도시가 나옵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예리코까지의 거리는 약 39킬로미터이니 그리 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예리코라는 도시는 참으로 특별한 도시입니다.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인류 역사상 가장 먼저 이곳에 도시가 형성되었답니다.
동시에 이 도시는 해저 258미터에 위치해 있어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도시로 유명합니다.
또한 예리코 시 북쪽 2킬로 지점에는 엄청난 양의 물을 쏟아내는 술탄샘이 있는데,
이 샘 덕분에 예리코는 아름다운 오아시스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직경 5킬로미터 정도의 광활하고도 비옥한 초원이 생성되었습니다.
요즘에도 이 초원에서는 대추야자, 감귤, 바나나 등 많은 종류의 과일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 헤로데 왕과 아르켈라오는 그리스-로마 양식의 화려한 건축물들을 건설할 정도로
예리코는 사람 살기 딱 좋은 장소였습니다.
자연스레 많은 사람들이 예리코에 정착하게 되었겠죠.
비옥한 오아시스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들의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사람들의 왕래도 잦았습니다.
자연스레 구걸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구상 가장 낮은 도시 예리코를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존귀한 분,
예수님께서 지나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앞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련한 한 사람,
이른바 예리코의 소경이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절묘한 조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장 높은 존재와 가장 낮은 존재가 예리코에서 마주치는 것입니다.
주님의 뜨거운 사랑이 인간의 가장 비참함을 어루만지십니다.
그 결과가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길을 걸을 때면 앞이 안보이니 언제나 담을 더듬고 걸어야만 했습니다.
눈을 떠도 캄캄 눈을 감아도 감캄하니 도대체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앞이 안 보이다보니 틈만 나면 여기 부딪치고 저기 부딪쳐 어디 한군데 성한 데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못한 목숨이었습니다.
이런 예리코의 소경을 주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즈카르야 예언자의 말씀대로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신”
(루카복음 1장 79절) 것입니다.
예리코의 소경은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지만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되살아났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죽은 사람 취급하고 교회 공동체에서 제외시켰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를 측은지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셨습니다.
마침내 그에게 다가가시어 그를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정말이지 올라가고 싶지 않은 길, 예정된 죽음의 예루살렘 골고타 언덕을 향해 올라 가시면서도
죽어가고 있는 한 소경을 살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리코의 소경의 치유를 통해 온 몸으로 외치셨습니다.
“나는 곧 죽겠지만 너희는 살아야 한다.
십자가형은 내 한 몸이면 족하다.
너희 모두 고통을 당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끔찍한 십자가형에 처해지겠지만 나로 인해 너희는 살 것이다.
너희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너희는 구원받을 것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시 예리코에 도착하신 예수님께서
대단한 설교를 하신다거나 감상에 젖지 않으시고 지금 당신 눈앞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한 인간을 향해 연민과 측은지심의 눈길을 보내십니다.
지금 가장 당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한 인간을 치유하시고 돌보심을
메시아는 어떤 분이신지를 잘 보여주고 계십니다.
예리코로 입성하는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의 요란한 함성에 파묻힐 뻔 했던 소경의 외침을 들으셨습니다.
백성들의 대단한 환호와 열광 속에서도 한 고통 받는 사람의 외침에 더 우선권을 두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참으로 제 마음을 훈훈하게 만듭니다.
예리코의 소경은 사실 오늘 우리들입니다.
겉으로는 뭔가 대단해보이지만 돌아서면 쓸쓸해서 속울음 우는 우리들이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는 예리코의 소경처럼 있는 힘을 다해 외쳐야겠습니다.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루카복음 18장 38절)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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