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에피소드

maria4759 2014. 4. 17. 00:59

 

 

 

      에피소드      


    
               '사제의 길로 이끌어 주신 어머니께 감사  
            인생을 돌이켜 보면 사람들 앞에 내세울 만한 게 별로 없다. 
            런데도 평화신문 독자들에게 이 지면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행여나 내 자랑이나 늘어놓은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다.
            내 구술을 받아 정리하는 김 바오로 기자가 "오늘은 아주 쉬운 질문만 할
            테니 지체없이 즉 답을 해주면 좋겠다"면서 질문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의 어떤 면을 찾아내려고 하는 건지 질문 내용이 하나 같이 
            쉬운 듯 하면서도 까다롭다.
               -늙으면 섭섭한 게 많다고 하는데?
            "노인네가 노여움 탄다는 말이 있다. 자식들 뜻은 그런 게 아닌데 그들 언
             행에 섭섭함을 느끼는 일종의 소외감이다. 나는 청력이 떨어져 보청기를 
             껴도 말이 잘 안 들릴 때가 있다. 이를테면 나를 찾아온 손님들이 자기들
             끼리 뭔가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웃는데 난 영문을 몰라 소외감(?)을 느끼
             곤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연세 많은 분들이 자주 '내가 어서 죽어야지'라고 말하는데 그게 거짓말
             이라고 한다. 그런 거짓말한 적 있나?
            "매일 한다.(웃음) 나이가 85살이다. 내일 죽는다고 해서 빨리 죽었다고 
             얘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즘은 사람들이 '건강하게'라는 말은 빼고 
            '오래 사십시오'라고 인사하는데, 장수(長壽)가 육체적으로 얼마나 고달픈 
             지 모르고 하는 인사 같다. 요즘은 대학입시를 앞둔 수험생 심정이다."
            -살아오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은?
             "신부가 된 것이다. 어머니에게 등 떠밀려 신학교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신부 외에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은?
            "결혼해서 처자식과 오순도순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 
             굴뚝에서 저녁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시골 오두막집, 
             얼마나 정겨운 풍경인가."
            -사제 직 외에 동경한 것은?
            "코흘리개 시절 꿈은 읍내에 점포를 차려 돈을 버는 것이었다. 
             그런데 장사를 하지 않길 잘했다. 나 같은 사람은 허구한 날 사기를 당해 
             알거지 되기 십상이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도 동경했다.유학시절, 오스트리
             아 빈에서 잠시 서정길 대주교님 병 수발을 들 때 값싼 입석 표를 끊어 
             음악회에 자주 갔다. 열정적으로 지휘봉을 휘두르는 지휘자의 손 끝에서 
             선율이 흘러 나오는 것 같아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많은 어휘를 함축해 
             아름답게 표현하는 시인도 부럽다."
            -좋아하는 시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 특히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대목을 좋아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로 시작되는 서시도 참 좋은 시지만 감히 읊어 
            볼 생각을 못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게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애송시 한 편 읊어달라.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고은 '가을편지')
    -애창곡은?
    "온 국민의 애창곡 '사랑해 당신을'. 예전엔 '저 별은 나의 별'을 
    자주 불렀는데 앙코르 요청을 받으면 '등대'를 이어 부르곤 했다."
    -별과 등대, 어둠 속 길잡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잡기(雜技)는?
    "신부님들 실력에는 못 미쳤지만 신학생 시절에 장기를 제법 잘 뒀다. 
    신부님들이 차포(車包) 떼어 주면 이길 때가 많았다. 
    덕분에 오징어를 자주 얻어 먹었다. 
    화투는 고스톱보다 6백(600점 먼저 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을 좀 쳤다. 
    저녁식사 후 명동성당 구내를 산책하다 가톨릭 회관에 붙어 있던 
    성모병원 간호수녀님들 방에 들러 가끔 쳤다. 
    할머니 수녀님 한 분이 그걸 꽤 좋아하셨다."
    -십자가와 성경을 제외한 애장 품은?
    "성 김대건 신부님 성해 일부분, 성모상, 칫솔, 면도기, 그리고 20년 
    넘게 차고 있는 손목시계."
    -운전을 잘 한다면 지금 차를 몰고 가보고 싶은 곳은?
    "특별히 가보고 싶은 곳은 없다. 
    젊었을 때 그런 질문을 받았으면 대답할 게 많았을 텐데…."
    -장거리 비행이 가능하다면 어느 나라를?
    "뉴질랜드. 공기가 맑고 경치가 좋다. 
    언젠가 한 번 갔을 때 다음에 또 오겠다고 했는데 여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도 한번 다녀가라는 재촉을 받았다."
    -하느님께서 단 하루만 허락하신다면? 
    "'하루는 너무 짧습니다' 하고 하소연을 해야 하나? 아니다. 
    '하느님 제가 당신을 배반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당신 사랑을 믿으며 당신 품에 들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하겠다."
    -새 내기 직장인이라면 연봉을 얼마나 기대하겠나?
    "1000만 원 정도."
    -그 돈으로 어떻게 가족 부양하고 집 장만할 건가? 
    "한 달에 80만 원 정도면 밥 먹고 전철 타고 다니고, 
    물도 사 마시고……. 
    그래도 20만 원 정도 남을 것 같은 데."
    -3만 원으로 여자 친구와 하루 데이트를 한다면? 
    "점심 먹고 영화보고 분위기 좋은 데 가서 저녁 식사하겠다."
    -요즘 2명이 영화 보려고 해도 1만 5000원은 가져야 하는데?
    "영화 표 값이 언제 그렇게 올랐느냐? 밥값보다 더 들겠네. 
    그럼 빵이나 햄버거 사기지고 북한산에 올라가면 어떨까?" 
    -하늘나라에서 어머니를 만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은?
    "고맙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사제의 길로 인도해주셔서 
    한 생을 잘 살다가 왔습니다. 
    속상하고 힘들었던 일도 털어놓고 싶은 게 좀 있기는 하지만."
    -가장 가깝게 지내는 사람은? 
    "30년 가까이 내 발이 돼 준 운전기사 김 형태(요한) 형제. 
    성실하고 운전 잘하고 마음씨가 곱다."
    -추기경 김수환은 (        )다.
    "추기경 김수환은 바보다. 
    하느님은 위대하시고 사랑과 진실 그 자체인 것을 잘 알면서도 
    마음 깊이 깨닫지 못하고 사니까."
    -하늘나라에 갔을 때 하느님이 잘못을 지적하며 꾸짖으신다면?
    "'그래도 좀 억울합니다' 하고 항변을 해야 하나. 
    하느님은 인자하신 분이니까 
    모든 허물을 덮어 주실 것이라 믿는다."
    -22세기 사람들이 추기경 김수환을 어떻게 기억해주길 바라나?
    "글쎄…. 참 못난 사람이라고 기억하지 않을까? 
    훌륭하지는 않아도 조금 괜찮은 구석이 있는 성직자로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기는 한데."
    -묘비에 남기고 싶은 말은?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 23, 1).
    <계 속>
    [평화신문, 제736호(2003년 8월 10일),김원철 기자]
    [편집 : 원 요아킴]
    

    ☆ 어머니 - 류 해욱 신부 - ☆
      가을이 깊어 갑니다. 창문 밖, 앞 산 진한 갈색으로 변한 몇 그루의 나무에서 잎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머니가 중력의 힘에 떨어지는 잎 새처럼 그렇게 힘없이 땅에 떨어져 그분께로 가신지도 어느 새 15년이 지났습니다. 어머니는 15년 전, 11월 1일, 모든 성인의 대축일에 새벽 미사를 가시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이승과 작별을 나누셨지요. 어머니의 기일을 앞두고 기도하게 되는 것은 어머니를 위한 기도는 아닙니다. 어머니는 그분과 함께 머무시리라 믿으니까요. 저 자신과 우리들, 시대를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모두가 살기 어렵다고 하는데, 그 근본 원인을 생각해 봅니다. 문득, 이 시대가 어머니, 말하자면, 어머니의 정신,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혼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경제 위기, 금융 위기 등의 이야기를 하지 만 실상 더 큰 위기는 영혼을 잃어버린 위기가 아닐까요? 거기서 모든 위기가 시작된 것이 아닐까요?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간이 달나라를 다녀 온 것이 벌써 50년이나 되었지만 우리는 50 년 전보다 더 행복해졌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이태백이 놀던 달, 토끼가 방아를 찧던 달, 동화와 꿈을 담고 있던 달을 잃어버리면서 우리는 영혼에 상처를 입고 아파하게 된 것은 아닌 지요? 제가 현실적 삶에서 느끼는 위기는 분명 경제 위기는 아닙니다. 물론 제가 신부로서 생활의 전선에서 투쟁하는 전사가 아닌 까닭도 있 겠지만, 분명 정작 오늘날 우리가 겪는 위기는 정신과 영혼, 어머니를 잃어버린 상실의 아픔이 그 근원적인 원인입니다. 이 상실의 아픔을 추락과 공포로 표현하며 기도로 노래한 시인이 있습니다. 국문학자이며 시인이신 정 한모 선생님입니다. 오늘은 정 한모 선생님의 시 두 편을 읽으며 저도 잃어버린 어머니를 찾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가을에 - 정 한모 -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 들으며 가볍게 가을을 나르고 있는 나뭇잎, 그렇게 주고받는 우리들의 반짝이는 미소로도 이 커다란 세계를 넉넉히 떠받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해 주십시오.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 엄마의 치마 곁에 무릎을 꿇고 모아 쥔 아가의 작은 손아귀 안에 당신을 찾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어제 오늘이 마침내 전설 속에 묻혀 버리는 해저(海底) 같은 그 날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달에는 은도끼로 찍어 낼 계수나무가 박혀 있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영원히 아름다운 진리임을 오늘도 믿으며 살고 싶습니다. 어렸을 적에 불같이 끓던 병석에서 한없이 밑으로만 떨어져 가던 그토록 아득하던 추락과 그 속력으로 몇 번이고 까무러쳤던 그런 공포의 기억이 진리라는 이 무서운 진리로부터 우리들의 이 소중한 꿈을 꼭 안아 지키게 해 주십시오. 어머니 -정 한모- 어머니는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그 동그란 광택(光澤)의 씨를 아들들의 가슴에 심어 주신다. 씨앗은 아들들의 가슴속에서 벅찬 자랑 젖어 드는 그리움 때로는 저린 아픔으로 자라나 드디어 눈이 부신 진주가 된다. 태양이 된다. 검은 손이여 암흑이 광명을 몰아내듯이 눈부신 태양을 빛을 잃은 진주로 진주로 다시 쓰린 눈물로 눈물을 아예 맹물로 만들려는 검은 손이여 사라져라. 어머니는 오늘도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저는 어머니의 사랑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한 다른 시를 알지 못 합니다. ‘어머니’라는 말 한마디에 담겨 있는 수많은 정서 때문에 ‘어머니’에 관한 시를 쓰게 되면 자연 감상적이 되어 정작 적절한 은유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 한모 선생님은 흔히 빠지기 쉬운 감상에 젖지 않으면서 ‘눈물’을 진주로 만드는 탁월한 연금술을 보여 줍니다. 시인은 아들을 위한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적인 삶을 ‘눈물’이라는 한 단어 안에 압축하면서 그 눈물이 ‘진주’를 만든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은 그 자체로는 어둠입니다. 어머니가 생전에 겪으셔야 했던 삶의 굴곡이 어둠으로 표상됩니다. 그러나 그 어둠이 아들을 빛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당신은 어둠 속에 사시면서도 아들의 가슴에 빛, 광택의 씨를 심어 주시고자 눈물로 진주를 만드시는 어머니. 어머니는 진주의 영롱함을 가리게 하는 ‘검은 손’은 사라지라고 외칩니다. ‘검은 손’은 눈물을 진주로 만드는 삶의 굴곡 안에서 겪어야 하는 숱한 난관의 은유입니다. 시인은 ‘검은 손’은 사라지라고 외치지만 저는 어머 니가‘검은 손’과의 힘겨운 투쟁을 통해 ‘눈물’을 ‘진주'로 만드는 연금술 을 터득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머니, 오늘은 눈물을 진주로 만드시던 당신의 손을 잡고 싶어 가만히 허공에 손을 내밀어 봅니다.

출처 : 그래도 밤이어라 Aunque Es De Noche
글쓴이 : 장미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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